우리들이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초등학교 여자아이들의 관점으로 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친구라는 말, 그렇게 쉬운 걸까?" - 영화 《우리들》 리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른보다 더 복잡한 아이들의 세계, 초등학교와 그 바깥
《우리들》은 초등학생의 시선으로 ‘관계’와 ‘소외’, 그리고 ‘성장’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수도권 외곽의 한 평범한 초등학교와 주택가 골목으로 묘사됩니다. 특별하거나 극적인 환경은 없습니다. 학교의 복도, 운동장, 동네 편의점,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그리고 주인공 선의 집과 지아의 집이 주요 배경입니다. 하지만 이 평범함이야말로 영화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관객은 이 공간들 안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친구와 손잡고 뛰어놀던 운동장, 급식시간의 자리 배치, 주말마다 놀러가던 친구 집 앞 골목. 《우리들》의 배경은 단순한 공간의 기능을 넘어, 감정의 무대이자 관계의 변화가 생생히 드러나는 사회의 축소판으로 작용합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잔인하기도 합니다. 또래 무리에서 소외되는 일이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 우정의 경계, 배신과 오해가 낳는 마음의 상처 등은 영화 속 초등학교라는 공간에서 날것 그대로 펼쳐집니다.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선의와 지아가 겪는 감정의 격랑이 휘몰아치는 무대가 됩니다.
이 영화는 어른이 된 우리가 잊고 살던 ‘어린 시절의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합니다. 작은 오해 하나로 세상이 무너졌던 기억, 한마디 말에 울고 웃던 그 시절. 《우리들》은 그런 정서를 아이들의 언어와 공간 안에서 정제 없이 꺼내 보이게 됩니다.
등장인물: 우리 모두가 한때 선이었고, 지아였던 시절
● 선 (최수인 분)
영화의 주인공.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5학년 초등학생이다. 친구가 없는 외로운 학교생활을 이어가던 중 전학 온 지아와 친구가 되며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순수하고 다정하지만 자기표현이 서툴러 쉽게 상처받고, 때론 무기력하게 관계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선은 감정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성장해나간다.
● 지아 (설혜인 분)
서울에서 전학 온 또래 친구. 겉보기엔 밝고 씩씩하지만, 부모의 불화와 전학이라는 환경의 변화로 내면은 불안정하다. 선과 가까워지며 따뜻한 관계를 맺지만, 학교에서의 무리 적응과 또래의 시선 사이에서 점점 선과 거리를 두게 된다. 지아는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감정선을 지닌 인물이다.
● 보라, 민지 등 반 친구들
이들은 극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또래 집단 속에서의 분위기와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단 속 규칙, 리더십 구조, 따돌림 등의 현실을 보여주며, 선과 지아의 관계를 배경 속에서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 선의 엄마, 지아의 부모
어른 캐릭터들은 아이들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세계에 간접적으로만 개입한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배경이다. 지아의 부모의 갈등, 선의 엄마의 조용한 배려 등은 아이들의 감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우리들》의 인물들은 단순한 선악 구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누구도 전적으로 나쁘지 않다. 모든 인물이 가진 상처와 두려움이 정직하게 표현되며, 관객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줄거리: 여름방학부터 개학까지, 우정과 상처가 오가는 시간
영화는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시작됩니다. 선(최수인)은 친구가 없는 외로운 아이로, 급식시간마다 혼자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도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는 아이입니다. 반 아이들은 이미 무리를 이루고 있고, 선은 그 안에 끼지 못한 채 늘 바깥에서 머뭅니다.
어느 날, 전학생 지아(설혜인)가 반에 들어오고, 선은 자연스럽게 지아에게 말을 건네게 됩니다. 둘은 곧 친구가 됩니다.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놀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선은 자신의 외로움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에 너무나 벅차고 행복합니다. 지아 역시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 안정적인 애착 대상이 필요한 상태였기에, 선과의 관계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개학 이후 상황이 달라집니다. 지아는 점점 반 아이들 무리 속에 스며들고, 선과의 거리도 멀어지게 됩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지아에게 ‘외로움의 반복’을 허락하지 않기에, 그녀는 생존 방식으로 무리에 적응해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선은 다시 외톨이가 되고, 지아는 선과 함께했던 기억을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선은 반 아이들 앞에서 지아의 가정사에 대해 말해버리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둘의 사이는 크게 틀어집니다. 지아는 상처받고 분노하며 선에게 등을 돌리고, 선은 죄책감과 슬픔에 휩싸이게 됩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어른처럼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두 아이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이후 학교 행사와 계절의 흐름 속에서 아이들은 서서히 각자의 감정을 정리합니다. 영화는 뚜렷한 화해 장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향해 다시 눈을 마주치며 작은 인사를 나눕니다. 이 장면은 겉보기엔 소박하지만, 그 안에는 용서와 이해, 그리고 다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담겨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극적인 사건 없이도 인물의 작은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로 깊은 서사를 만듭니다. 여름방학의 들뜬 공기부터, 가을의 차가운 바람까지 계절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한때 ‘우리’였던 기억을 마주하게 됩니다.
관람 포인트: 관계의 민낯, 그리고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들
1. 외로움과 관계 맺기의 두려움
영화의 주인공 선은 반에서 늘 혼자인 아이지만, 그 외로움에 익숙해지려 애를 씁니다. 그러다 어느 여름방학, 전학생 지아와 친해지며 처음으로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런데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죠. 지아는 다시 반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선을 밀어냅니다. 우리는 선의 혼란과 아픔에 마음이 저릿해짐을 느낍니다. 친구를 진심으로 좋아했는데, 갑자기 모른 척하는 상대의 변심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감정. 그것은 단지 아이들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인간관계 속에서 겪는 감정입니다.
관객은 선이 느끼는 외로움에 자신을 투영합니다. "왜 나랑은 다르게 구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이 질문은 어릴 때도,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2. 상처 주고, 상처받는 게 무섭지만 당연했던 시절
《우리들》은 아이들이 순수하다는 말에 경종을 울리는 영화입니다. 아이들은 놀랍도록 섬세하고, 동시에 무심하며, 또 잔인할 수 있스비다. 선은 지아와의 관계에서 밀려나고, 상처를 받고, 어느 순간 자신도 누군가를 향해 작은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아주 사소하고 은근하게 예를 들어 지아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그를 모른 척하며 외면하는 방식으로요.
그 모습은 절대 낯설지 않다. 우리가 어릴 때 한 번쯤 겪었고, 혹은 해봤을 감정입니다. 미움과 질투, 애정과 그리움이 동시에 얽힌 복잡한 감정. 이 영화는 그런 이중적인 감정들을 낱낱이 보여주면서도 누구도 확실한 가해자나 피해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하면서도 공감하게 됩니다. "그땐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어." 하고 스스로를 용서하게 되는것 처럼요.
3. 말하지 못한 감정의 무게
선은 지아에게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지아 역시 선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못힙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어리고, 그 감정이 너무 커서 말로 옮기기엔 버겁습니다.
그 침묵은 우리 모두의 유년 속에도 존재했습니다. 좋아했지만 말하지 못했던 친구, 섭섭했지만 차마 상처받을까 봐 말하지 못했던 그 감정.
관객은 선의 입을 빌려 자기 어릴 적의 침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우리들》은 그 침묵을 이해하게 해준다. 말하지 못했다고 해서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라는 걸, 그저 너무 소중해서 꺼내놓을 수 없었던 감정도 있다는 걸.
4. 화해와 용서가 아닌, 성장의 감정
영화는 어떤 명확한 해답이나 결말을 주지 않습니다. 선과 지아가 진심으로 화해하지도, 완전히 친구로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그 감정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의 끝에서 조금 자란 선을 봅니다. 감정을 억지로 덮지 않고, 견디고, 지나가는 방식을 배우게 된 아이.
그걸 보며 관객도 알게 됩니다. "아, 저 감정은 나를 괴롭혔지만 결국 나를 자라게 했구나."
성장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상처받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걸, 이 영화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조용히 들려줍니다.
5. 어른들이 모르는, 그러나 우리 모두가 겪었던 이야기
《우리들》을 보면 문득, "왜 어른들은 우리 감정을 그렇게 가볍게 여겼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아이들 사이의 싸움, 따돌림, 불편한 관계를 ‘그럴 수도 있지’라며 지나쳤던 어른들의 무심함.
그러나 관객은 그 속에 숨겨진 고통과 혼란이 얼마나 복잡하고 깊은지를 봅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 혹은 외면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첫걸음을 떼게 됩니다. 이 영화는 그걸 가능하게 해줍니다.
‘나도 그랬어’라는 말이 필요했던 우리들에게
《우리들》은 조용하지만 강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느낀 가장 진짜 같은 감정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감정들, 외로움, 질투, 상처, 화해, 성장.
이 영화를 보는 일은 마치 오래된 상자를 열어보는 일 같습니다. 그 안에는 어릴 적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마음이 들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깨닳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괜찮다."